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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4 - [read, think, write] - 결심

 

결심

성장은 즐거움의 원천이다. 재정적인 면과 실력, 능력의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일. 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작은 단계로 쪼개어 하나씩 이루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을 채우는 방식이다.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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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짚었듯, 뇌력과 심력과 신력이 조화를 이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 힘은 어디까지나 도구다. 도구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을 쥔 손이 방향을 모르면 정교함은 오히려 위험해진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필요한 것은 그 세 힘을 지켜보는 시선, 곧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는 결국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왜 이것을 원한다고 느끼는가"를 관찰하는 능력이 아닐까. 내가 나를 어떤 조건이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조급함이 진짜 나의 욕망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기준을 무의식중에 욕망으로 착각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시선. 심력을 아무리 단련해도 그 힘이 엉뚱한 방향으로 소진되고 있다면 소용이 없고, 뇌력을 아무리 갈고닦아도 정작 무엇을 위해 쓰는지 모른다면 방황만 정교해질 뿐이다. 메타인지는 이 셋을 관장하는 상위의 눈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스탯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스탯을 왜 올리고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성장은 방향을 갖는다.

그런데 메타인지가 향해야 할 곳은 또 다른 목표가 아니다. 여기서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자신을 관찰하는 능력을 얻으면 더 크고 정교한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 하지만 메타인지가 정직하게 작동한다면 오히려 반대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having의 태도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지점은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써만 닿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행복을 인지한다는 말의 뜻이다.

행복해지겠다는 결심과 행복을 인지하겠다는 결심은 문법은 비슷해도 방향이 정반대다. 전자는 미래의 어느 지점에 행복이라는 대상을 놓아두고 그곳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태도이며, 후자는 지금 이 순간 이미 작동하고 있는 어떤 상태를 알아차리는 태도다. 호킨스가 말한 안전감도 비슷한 결을 갖는다. 안전은 미래에 도달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조건과 무관하게 이미 존재할 수 있는 내면의 상태라는 것. 결국 행복도 그렇다.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오는 결과가 아니라, 조건과 별개로 지금 이미 인지될 수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 인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여가의 감각이다.

결심을 물리적 사물에 새겨 넣는 행위. 다만 그 결심이 향한 곳이 having(더 많은 것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 프레임처럼 오래도록 남아 누군가의 시야를 규정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피퍼는 여가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과 구분했다. 여가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된 시간이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머무는 시간이다. 뇌력과 심력과 신력을 쌓아올리는 having의 방식이 삶의 절반이라면,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견디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being의 방식이 나머지 절반이다. 지금까지의 결심들이 전자에만 치우쳐 있었다면, 앞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후자를 향한 감각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뇌력과 심력과 신력은 삶을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이지만, 그 기둥이 어디를 향해 서 있는지 지켜보는 것은 메타인지의 몫이다. 메타인지가 정직하게 작동할 때 도달하는 곳은 새로운 목표가 아니라 행복의 인지이며, 그 인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좇는 태도에서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머무는 여가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성장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성장의 끝에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놓여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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