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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카프카

beos 2026. 9. 29. 18:34

 인간이 벌레가 되는 것이 비극인가, 일을 안하는 인간을 벌레처럼 취급하는 사회가 비극인가.

 『변신』을 읽는 방식은 이 질문에서 갈린다. 앞쪽으로 읽으면 이 소설은 한 개인에게 닥친 불운의 이야기다. 어느 날 몸이 변했고, 가족은 그 낯섦을 견디지 못했다. 뒤쪽으로 읽으면 변신은 사건이 아니라 폭로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 벌레가 되어서 버려진 이유가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 것이다.

 눈을 뜬 그레고르가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자기 몸이 아니라 기차 시간이었다. 가족이 가장 먼저 묻는 것도 "괜찮니"가 아니라 "왜 출근하지 않니"였다. 벌레가 되기 전부터 그는 이미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몫의 노동력으로 불리고 있었다. 

 

 

지금 세상도 여전하다. 릴스 속에서 2년간 방을 나오지 않던 청년을 끌어내 교정 시설에서 운동하고 일하는 사람으로 바뀌자 사람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변신』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레고르가 죽자 가족이 소풍을 떠나는 것과 같은 안도감이다. 쓸모없던 존재가 치워지거나 쓸모 있는 존재로 교정되면 우리는 이제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레고르는 시선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족을 원망하기보다 짐이 된 자신을 부끄러워하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사람을 쓸모로 환산하는 방식은, 본인 스스로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래서 첫 질문의 답은 이렇다. 비극은 쓸모라는 조건이 붙은 채로만 인간으로 취급 받는 것. 카프카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 방 하나에 가둬 보여주었다.

 일이 사라지는 시대가 온다면 이 질문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조건이 노동에서 창의성이나 취향으로 바뀌어도, 조건을 통과해야만 인간으로 인정하는 구조가 남아 있다면 벌레의 자리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벌레가 되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벌레로 만드는 구조와 시선을 우리가 아직 갖고 있는가일지 모른다. 

벌레를 만드는 시선은 결국 나에게도 온다. 우리는 지금 일을 하고, 일은 곧 돈이고, 돈은 내가 쓸모 있다는 확인이다. 그러나 언젠가 일하지 않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느라 수입이 끊기는 때도 있고, 늙어서 더는 일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그때가 되면 쓸모로 나를 설명할 방법이 사라진다. 그때 나를 존중해 줄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도 존중해 본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온다. 일하지 않는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사회에서는 나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일을 하든 안 하든 똑같이 대하는 것이 결국 나의 노후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쓰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다. 

일을 하지 않는 시대에 카프카의 변신은 어떻게 읽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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