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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Experiment

beos 2026. 9. 28. 15:51

삶의 실험 - 이런 모습의 나는 어떠한가



 일이 지나간 뒤 일주일 정도 한가해진 적이 있다. 평소에는 하루가 모자랄 만큼 움직이는데 할 일이 줄어드니 시간이 남았고, 조금 지루했다. 쉴 겸 다른 생각을 하려고 생긴 시간인데, 정작 쉬는 사람처럼 앉아 있지는 못했고 생각도 뻔한 리서치에서 맴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해 계속 무언가를 하게 되는 상태에 가깝다. 생각해 보니 나도 꽤 잘 훈련되어 있었다. 일이 많으면 힘들다고 하면서도 일이 없으면 금방 다른 일을 찾는다. 일은 직업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 것 같다.

 그 일주일 동안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건 지루함이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는데도 멀리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메신저는 조용했고, 일정표는 비어 있었고, 마감도 없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바라던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서니 첫날은 괜히 서랍을 정리했고, 둘째 날은 이유 없이 메일함을 열었고, 사흘째에는 어제 본 화면을 다시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손이 가는 곳은 늘 같은 곳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을 때 손이 먼저 가는 곳이 지금 내 삶의 실제 무게중심이자 단순 습관이다.

일은 돈만 주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구조화하고, 목표를 만들어주고, 사람을 만나게 하고, 내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인지도 알려준다. 그래서 인간이 일을 점점 덜어내는 시대가 온다면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 이상의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그런데 일을 덜 한다고 삶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남으면 그 시간을 무엇에 쓸지 결정해야 하는데, 그 준비는 별로 되어 있지 않다. 돈도 비슷하다. 일이 줄어도 나는 돈을 벌고 싶을 것이다. 돈은 아주 편리한 목표다. 숫자로 보이고, 쌓이는 게 보이고, 다음 목표도 쉽게 만들어준다. 10억을 모으면 20억이 보이고, 20억을 모으면 50억이 보인다. 돈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문제는 돈으로 시간을 샀는데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모르는 경우다.

그럼 그렇게 비어 있는 시간에 내가 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그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좋은 몸,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여행, 좋은 브랜드. 좋다는 건 다 내가 원하는 것 같지만 그 욕망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뻔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본다. 처음에는 내가 이미지를 고르는 것 같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이미지가 나를 고르기 시작한다. 어떤 몸이 좋은지, 어떤 집이 세련됐는지, 어떤 차가 성공을 상징하는지, 어떤 여행이 좋은 삶인지 계속해서 뇌리에 남는다. 패션은 그 구조가 특히 잘 보이는 분야다. 미니멀리즘도 스타일이 되고, 자유로운 삶도 스타일이 되고,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조차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 욕망에서 사회의 영향을 완전히 떼어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보려고 한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가?’보다 ‘이 욕망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도 내가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나는 요즘 몸을 만들고 싶다. 수영도 하고 웨이트도 하면서 근육을 늘리고 체지방을 줄이려고 한다. 처음에는 건강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상상하는 내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어떤 몸을 좋은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 것이다. 그래도 그것을 알고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러면 운동하는 이유도 달라진다. ‘이런 모습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면 다른 모습을 시험해보는 일이 된다. 같은 운동을 해도 출발점은 꽤 다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삶을 알아내는 방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 궁금한 것은 직접 살아보는 것이다. 좋은 몸이 궁금하면 운동해 보고, 다른 도시가 궁금하면 한 달쯤 살아보고, 새로운 사업이 궁금하면 작게 시작해 본다. 디자인할 때와 비슷하다. 처음부터 완성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써보고, 예상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고, 다시 고친다. 그러면 실패도 다르게 보인다. 이 삶을 망친 것이 아니라 이런 삶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알고리즘은 어떤 삶이 좋아 보이는지는 끝없이 보여줄 수 있지만, 그 삶을 살았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일지는 알 수 없다. 화면에서 멋있던 도시가 막상 살아보니 불편할 수도 있고, 갖고 싶던 물건이 손에 들어온 뒤에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은 알고리즘이 줄 수 없는 데이터를 준다.

그래서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아무도 시키지 않을 때 내 손이 어디로 가는가를 먼저 관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되고 싶은 나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도록 시간을 쓸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놓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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