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 and control (분열시키고 통제하라)
지배 구조가 설계한 심리적 함정
The Willie Lynch의 <Letter and the Making of a Slave> 란 오래된 책이 있다. 쉽게 말해 백인 주인이 쓴 노예 만드는 법인데, 당시 노예가 주인을 죽이고 도망가는 일 등이 종종 발생해서 이를 위해 쓴 책이라 한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들은 이 모든 구분을 통해 노예들끼리 서로 불신하고 경쟁하게 만들어, 백인 주인에게 충성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늙은 노예 vs 젊은 노예 / 밝은 피부 vs 어두운 피부 / 남성 노예 vs 여성 노예 / 집안일 노예 vs 들판 노예처럼 나누고 차별하고 구분한다.
노예들간에도 밭일하는 노예, 집안일하는 노예 (필드 니거) 사무적 업무를 시키는 노예, 집사 (하우스 니거) 이렇게 다양하게 계층을 만들고 계층 간 차이를 명확히 하고 차별대우를 해서 노예들 간의 분란을 만들었다.
필드 니거들한테 노력하면 하우스니거가 될수있 다는 헛된 희망을 심어주고, 하우스니거한테는 나름 대우 좀 해주면서 필드 니거를 일부러 깔보게 시켰다 공포, 불신, 의심을 체계적으로 심어두면, 심리적 조작으로 세대를 넘어 노예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보면 사무엘 잭슨이 딱 그 맛이다. 백인들에게 투덜대는 폭삭 늙은 이미지의 흑인 하우스니거. 백인이 만든 흑인의 어떤 케이지 안에서 오래 생존하면서 지배 계급의 입맛에 맞는 '생존형 고인 물 노예'로 그려진다. 절름대지만 꾀를 잘 쓰고 충성스럽고 고자질도 잘한다!
고대 수렵시기부터 인간들은 작은 그들의 집단과 상대 집단을 구분하며 생존해 왔다. 우리끼리 살아남기 위해 저들은 배제해야 한다는 건 분열을 통한 생존 본능이었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집단 정체성의 재현을 위해 종교, 지역, 선호하는 브랜드, 인종 등으로 너와 나를 가른다. 옳다기보다는 누가 내 편인지를 가르는 시대가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노예를 만드는 것은 인간 내제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영역을 건드는 것이라 피하기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우리와 그들로 나누기 보다 우리와 우리로 새 영역을 묶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나만 우리와 우리라 보지만, 그들은 우리와 너네로 나누며 교묘한 계급차이로 출장 시 비행기 클래스를 가르고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 관용을 그들에게 베푼다. 고인 물 노예 사무엘 잭슨은 그럼에도 일반석에서 나름의 여유를 즐기며 그마저도 다른 노예보다는 인정받는 거라며. 필드 니거보단 나은 하우스 니거라며 안도했을 것이다.
여기서 이 구조에 순종하며 대감집 머슴이 양반집 머슴보다 낫다고 생각하느냐, 이 덫에 빠진 상황에 분노하며 나도 주인 한번 되어서 니거들의 계층을 나누고 날 위해서 일하기를 강요하기보다는 분위기를 조장하며 시스템을 만드는 인간이 될 것인가.
결정은 어렵다. 결심은 사람의 두뇌를 바꾼다고 한다. 무얼 결심할지는 용기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