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면접은 9시였다. 오전에는 주로 대표 면접이 많은 듯했다. 사옥으로 오라고 했고 10분 15분 전까지 사옥 앞에 도착했다. 본사를 들어가려면 지문을 찍고 들어가야 해서 나는 밖에서 서성댔는데, 젊은 경비가 면접이라 하니 메시지를 보여달라 했고, 보여줬고 안에 들어가서 앉아 기다렸다. 다를 담당하는 부서의 직원이 안내해서 2층인가 3층에 있는 시계가 빨리 지나가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 넓은 방안의 악어 모양의 유리 테이블이 인상적이었고 나 외로 브랜딩팀 컬러 담당이라는 한 여자애가 면접을 보러 왔다. 해외 대학 졸업한 지 얼마 안돼 보였고 포트폴리오를 정말 제본하고, 만들었던 커다란 스와치를 엄청 많이 가져왔다. 나는 종이 두장을 가져간 게 다였는데.. 뭐 아이웨어 디자인이야 제품이랑 도면만 보고 이야기하면 됐지 란 생각에 주눅 들 일은 없었다. 내가 만든 안경을 쓰고 있었으니 상관없다 생각했다.
나의 큰 착각이었다.
우선 대표, 내 담당 팀장? 이 들어왔고, 내 옆에 있는 면접자를 데려온 지인인가 하는 사람은 나갔다. 그러니까 그림은 2:2 면접이었는데 실무자는 전혀 질문을 안 했고 사장의 혼잣말이나 오늘 며칠이지? 이런 물음에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면접은 오로지 대표랑만 이야기했다. 혹은 대표의 질문이 너무 어려우면 살짝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정도였다. 자기소개 이런 것도 없었고 대화는 자꾸 뻘쭘한 이야기만 오고 갔다.
담당자는 언제부터 출근 가능한지 먼저 물어봤다. 옆에 지원자는 담주 월요일부터~ 나는 한 달 반은 시간 주십시오 함. 나중에 대표가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물어봤는데 회사 일 정리하고 잘 인수인계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열심히 하던 곳이고 잘 지속됐으면 좋겠어서 사람 잘 뽑고 싶은데 괜찮은 아니 애초에 안경 디자이너가 잘 없어서 뽑기도 어렵다고. 사실이었다.
먼저는 나에게 질문을 했는데 5분도 안됐던 거 같다. 내 과제를 보더니 '이게 뭐야. 뭐 별로 대단한건 없잖아?' '우리 이런 거 없나?' '이거 팔려고 그린 거야?' 이런 말로 나의 전투력을 올렸고, 옆에 지원자 포폴을 손가락으로 휘휘 넘기면서 '컬러가 좀.. 올드해. 본인이 생각해도 그렇지?'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하면서 가야 하는... 충격을 줘야 하는데 이런 걸로.. 이름이 뭐였지? 아무튼 줄 수가 있겠나? 좀 뻔하잖아?' 등등 이야기를 했다. 지원자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원래 성격이 그런 거 같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하도 많이 뭔가 보고 들어서 다 지루해 보이는 듯했다. 옆의 지원자는 진땀 좀 빼고 있었고, 나는 뻔하긴 한데 그런 도면이 나온 이유를 그냥 간결하게 대답했다.
가령 '별거 없네, 이거 팔려고 그린거야?' (반말로 옆에 관계자에게 물어보는 척 하지만 사실 나에게 하는 질문인 듯) 하면 나는 '어쩌고 저쩌고라 그렇게 했다!'라고 했다. 나는 경력이라 희한한 그림보다는 현실적인 디자인과 실 생산에 맞춰서 그렸으니 그거 바로 공장에 보내서 샘플 보시고 괜찮으면 나 채용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튼 옆에 면접보는 친구는 진땀을 흘렸지만 원래 웃는 얼굴이었나 당황해도 웃고 있었는데, 나는 잘 못 웃기도 하고 내 생각에 아닌 거 같은 건 맞받아쳤다. 옆에 지원자는 미궁에 빠졌고 대표가 지원자 소개한 애 데려오라고 하더니 둘을 싸잡아서 '나 이분 채용하면 젠틀에 어떻게 도움되겠는지 이야기해봐. 당신이 추천했다며'라고 이야기했고 추천한 애도 당황했고 대표는 '둘 다 나가서 정말 회사에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진지하게 잘 생각해보고 아니면 돌아가고 맞다 싶으면 잘 고민한 다음에 부르면 들어와서 나를 설득세요' 하더니 악어가 있는 큰 방에서 내보냈다.
나랑 대표, 아이웨어 팀장만 남았는데 뭐 난 궁금한 것도 없고 대표도 썩 할 말이 없어 보였다. '텄네' 이 생각만 들었고 한편으론 젠틀에 대한 환상도 깨져서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전혀 젠틀하지 않았으나 딱 하나 와닿는 질문만 기억난다.
가치관에 대해 물어본다. 본인이 뭘 정말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일은 왜 하는지 왜 먹는지 왜 사는지를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고민에 고민을 하다 보면 키워드가 나올 거고 거기에 살을 좀 붙여서 준비해 가면 좋겠다.당신 가슴 정 가운데엔 무엇이 무게를 갖고 당신을 지탱하는지 이런 걸 물어본다. 좋은 질문이다. 젠틀하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 나에게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이 리더가 그래도 근본이 있는 사람이구나 란 생각을 하게 만든 질문이다. 썩히 멋드러진 대답을 하진 못했지만, 아마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이 질문을 던진거구만 하는 말을 했다. 그의 마음에는 항상 이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진심으로 보였다. 자신감이 많아서 자만해 보이긴 하겠지만 거짓말을 하는 타입의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강해보였는데 그건 자신이 이룰것이라는 믿음이라 생각된다. 덕분에 나와같은 면접자들은 그를 좋게만은 보지 않겠지만 뭔가 이루고 싶은 사람이 보기엔 반드시 붙잡아야하는 로케트로 보이겠지.
모든 걸 포기하면서 이루고 싶던 게 있는가? 죽을 정도로 뭔가 해본 적이 있는가? 를 물어봄. 난 대학 전공 포기하고 호주 다녀와서 옥탑방 월세 30짜리 구해서 공방에서 돈도 안 받고 안경 깎던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흥미 없어했다. 그런 건 포기한 게 없단다. 하튼 취미든 일이든 무언가 단 하나에 엄청나게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을 좋아한다. 디깅에 디깅에 디깅
나한테 궁금한 거 질문하세요 만 한 다섯 번 말하더라. 대표가 책을 엄청나게 정말 엄청 읽었다는데, 뭐든 내가 얘기하면 다 아니라고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했다.
내 질문이 조금 길어지면서 부연설명을 조금 하면 '질문만 말하세요 질문만~' 하면서 시계 들여다 봄. 뭔 말만하면 아니야~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진짜 이래서 네 하고 말았다. 사실 딱히 생각해 본적도 생각하기고 귀찮고 크게 사업이랑 연관되어 있지 않으니 그랬던 거 같다.
젠몬은 제품 유통 산업이 아닌 브랜드 가치 산업을 한다는 것을 난 그걸 마지막에 알았다.
하튼 나는 사람의 구조에 맞는 안경을 디자인하는 사람인데, 그런 판은 아마 없어질 거라고, 그럼 상균씨는 아예 필요없는 직업을 갖고 있는거라고 나한테 말하면서 넌 필요 없어질거라고 이야기했다. 그에 대해서도 인간이란 영화 가타카에 나오듯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다 시력이 엄청 좋아지지 않는 한, 안경에 대한 수요가 없어지지는 않고 축소되긴 하겠지만 그럴수록 살아남는 브랜드만이 독식할 거라고. 그때야말로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 대답했더니 또 진짜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라고 했다. 아 그렇습니까? 나중엔 대표님께서 맞다고 하실 이야기를 준비하겠다고 웃으면서 했다. 사십 분은 이야기한 거 같다. 이게 깔이 맞는 사람은 질문도 편하고 대화도 편하고 스무스하게 끝날 거 같은데, 나란 사람은 영 맞지는 않는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떨어진 줄 알았는데 받던 연봉이랑 희망 연봉 쓰라고 하고 나가라고 하더니 20분 뒤에 와서는 출근일 서로 조정하고 끝났다. 이건 그 팀장(?) 아직도 직책을 모르겠는데 그분이 힘써준 거 같다. 어쨌든.. 기억나는 면접 장면은 이게 전부다.